여행 이야기

2016.08.11 체코 프라하성-성비투스대성당

갯바우2 2016. 8. 19. 11:26

Clairle Hotel주위 55분간 조깅 - 프라하성, 슈바르첸베르크성(Schwarzenbersky Palac), 성비투스대성당 관광 - 트램타고 카를교,

구시청사 천문시계탑, 틴성당 관광 - 돼지 등갈비로 점심 - 신시가지, 바츨라프광장 관광 - 접시, 유리인형쇼핑 - 브르노 이동

- Hollyday Inn 투숙 - 저녁 스비치코바


프라하 성 주변










 슈바르첸베르크성 : 프라하성 정문 입구의 광장에 있는 성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1545~1567사이에 지어졌으며 

                            이 벽의 그래피티 기법은 스크라피토(Sgraffito)기법 이라고 하는데, 벽돌 외벽에 회반죽을 덧칠 한 후에

                            벽을 긁어서 명암과 대비를 표현하였으며, 거대한 건물 전체를 이렇게 표현했다.






프라하성 : 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성이다.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카를4세 때인 14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고, 이후에도 계속 여러 양식이 가미되면서 

               복잡하고 정교한 모습으로 변화하다가 18세기 말에야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프라하 구시가지의 블타바강 맞은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길이는 570m, 너비는 128m이며, 9세기 이후 통치자들의 궁전으로 사용된 로브코위츠 궁전 외에 성()비투스대성당·

               성조지바실리카.·성십자가교회 등 3개의 교회와 성조지수도원 등 다양한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1918년부터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면서 내부 장식과 정원이 새롭게 정비되었다.






성비투스대성당 : 성 비투스 대성당은 프라하 성의 제3정원에 있다.

                        블타바 강 너머에서 보일 만큼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며 프라하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9세기에 바츨라프 1세가 교회 건물을 지은 것이 성 비투스 대성당의 원형이고,

                        이후 11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다.

                        지금의 모습은 14세기 카를 4세가 고딕 양식으로 새로 짓기 시작하면서 갖추어진 것이다.

                        건설에 착수한 뒤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후스 전쟁이 일어나면서 그나마 중단되었다가

                        20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성 비투스 대성당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성당 지하에는 카를 4세, 바츨라프 4세 등 왕과 주교들의 묘가 있다.





스테인드 그라스, 실제는 색깔이 너무 화려하고 아름다웠는데 어두워 잘 안나옴





저기 스텐인드 그라스의 직경이 10.6m 정도라고...





카를교 : 블타바 강 우안의 구시가지와 좌안 언덕 위에 우뚝 세워진 프라하 성을 연결해 주는 카를교는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자,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중 하나이다.

            1357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프라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카를 4세가 블타바 강에 놓은 다리로 너비 10m, 길이 520m에 이른다.

            성 비투스 성당을 지은 페테르 파를레르시가 공사를 맡아 바츨라프 4세 때인 1402년에 완공되었다.
            16개 아치가 떠받치고 있는 이 다리는 유럽 중세 건축의 걸작으로 꼽힌다.

            다리의 시작과 끝 부분에 놓인 탑은 본래 통행료를 받기 위해 세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블타바 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300년에 걸쳐 제작된 30개의 성인상도 볼거리다.

            다리 양옆에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일렬로 늘어서 있는데, 성 요한 네포무크, 성 루이트가르트, 성 비투스 등

            체코의 유명한 성인 조각상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 조각상들은 모두 성경에 나오거나 성인으로 칭송받는 사람들을 새겨 놓은 것인데 그중 성 요한 네포무크 조각상이 가장 유명하다.
            성 요한 네포무크는 바츨라프 4세가 왕비 조피에의 고해성사 내용을 알려달라고 한 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이 다리 밑으로 떨어져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 난간에는 작은 청동 십자가 5개가 있는데 십자가에 손을 내밀어 5개의 별 중 하나를 만지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또 조각상 밑단에 그의 순교 장면이 묘사된 부조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전설 때문에 유독 새까맣게 손때가 많이 탔다.

            성인상들은 모두 모조품이고 국립 박물관에 진품이 전시되어 있다.














천문시계탑 : 프라하 구시청사 벽에 걸려 있다.

                  1410년 시계공 미쿨라시(Mikulas of Kadan)와 뒷날 카를 대학의 수학교수가 된 얀 신델(Jan Sindel)이 공동으로 제작하였다.

                  1490년 달력이 추가로 제작되고, 외관이 조각으로 장식되었다.

                  1552년 시계 장인 얀 타보르스키(Jan Taborsky)가 시계를 수리하면서 원래의 제작자로 하누시(Hanus)를 언급하였다.

                  이후 더 이상 똑같은 시계를 제작하지 못하도록 하누시의 눈을 멀게 만들고,

                  그의 죽음과 함께 시계 또한 작동이 멈추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졌는데, 오늘날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1552년 이후 시계는 여러 번 작동을 멈추었고 그때마다 수리가 뒤따랐다. 17세기에 움직이는 조각상을 덧붙이고,

                  1865년과 1866년에는 복구작업 끝에 사도들의 형상을 추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말, 전쟁의 영향으로 일부가 파손되면서 다시 작동을 멈추었으나 이후 보수를 거듭한 끝에

                  1948년에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날 프라하의 명물로 손꼽히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시계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시계는 상하 2개의 큰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쪽 시계를 칼렌다륨, 아래쪽을 플라네타륨이라고 부른다.

                  칼렌다륨은 천동설의 원리에 따른 해와 달과 천체의 움직임을 묘사하였다.

                  일반적으로 1년에 한 바퀴씩 돌면서 연, 월, 일, 시간을 나타낸다.

                  아래쪽 원은 12개의 계절별 장면들을 묘사하여 제작 당시 보헤미아의 농경생활을 보여준다.

                  매시 정각이 되면 칼렌다륨 오른쪽의 해골 모형이 움직이면서 12사도들이 2개의 창을 통해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이어서 시계 위쪽의 황금색 닭이 나와 울면서 시간을 나타내는 벨이 울린다.



틴성당 : 프라하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교회로, 1365년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계속 변형을 가해 17세기까지 다양한 건물 양식이 가미되었다.

            외관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정교하면서도 화려하고, 특히 80m 높이까지 치솟은 2개의 첨탑은 이 교회의 상징으로

            멀리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내부는 바로크양식으로 되어 있어 비교적 어두운 느낌을 준다.


바츨라프광장 : 블타바 강 왼쪽 지구로 중세 시대 카를 4세에 의해 조성된 신시가지에 속한다.

                     원래 마() 시장이 섰던 곳이며 광장 가운데 사형대가 세워졌던 역사도 있다.

                     너비 60m, 길이 750m의 광장은 엄밀히 말하면 광장이라기보다 드넓은 대로에 가깝다.

                     현재는 중앙 녹지를 경계로 차도와 인도가 나뉘어 있다.

                     광장 이름은 체코의 최초 왕조인 프르셰미슬 왕가의 왕 바츨라프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는 사후에 성인으로 추대된 체코 기독교의 상징적 인물이다.

                     광장 동남단에 성 바츨라프의 기마상이 성인 4명의 수호를 받으며 서 있다.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무대이며

                     여러 차례 프라하시민의 집회가 열린 민주화의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1918년의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선언이 이 광장에서 선포되었고

                    1968년에는 '프라하의 봄'이라 일컫는 자유화 운동이 일어나 광장 일대가 모여든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프라하의 봄은 소련의 군사 개입으로 큰 희생을 치렀지만

                    결국 1989년에 같은 장소에서 몇 십만의 시민들이 광장을 메우며 공산 정권의 몰락을 이끌어 낸 벨벳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광장에는 자유화 운동 당시 소련의 무력 개입에 항거하는 뜻으로 목숨을 끊은

                    얀 팔라흐와 얀 자이츠 두 젊은이를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숙소인 브르노의 Hollday Inn


스비치코바 :쫀득한 빵과 함께 제공되는 노란색 크림소스를 곁들인 소 등심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