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2016.08.12 헝가리 부다페스트

갯바우2 2016. 8. 19. 15:29

Hollyday Inn 주변을 50분간 조깅 - 브르노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동 - Kaltenberg에서 굴라쉬스프+오부다정식으로 점심
- 부다성 - 구시가지 - 마차시성당 - 어부의 요새 - 겔레르트언덕 - 성 이스트반 성당 - 영웅광장 -저녁 부대찌개

- 다뉴브강 야간 유람선 - Novotel 투숙


부다페스트의  다뉴브 강




브르노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동 - Kaltenberg에서 굴라쉬스프+오부다정식으로 점심

굴라쉬스프 : 우리의 육개장 비슷한 닭고기육수에 감자와 닭고기, 당근이들어간 짭짤한스프.

오부다정식 : 전통 헝가리 화덕에 직접 구운 갈비, 족발, 꼬치구이 그리고 밥이 나온다.








부다페스트 : 헝가리 평야의 북서부, 도나우강 양안()에 걸쳐 있으며, 우안의 부다와 좌안의 페스트로 이루어져 있다.

                  부다는 대지() 위에 자리하며, 왕궁()의 언덕·겔레르트 언덕 등이 강기슭 근처까지 뻗어 있고, 역사적인 건축물이 많다.

                  페스트는 저지에 자리한 상업지역으로, 주변지구에 공장과 집단주택이 들어서 있다.

                  철도·도로·하천 교통의 요지로 국제공항이 있다.

                  대표적인 산업은 기계공업이고, 철강·비철야금·화학·섬유·식품 등 공업도 활발하다.

                  정치의 중심지로서 중앙관공서, 옛 국회의사당 등이 있고, 문화의 중심지로서 과학아카데미·종합대학(에트뵈스로란드대학)·

                  의과·농과·경제 등 단과대학 외에 많은 도서관·박물관이 있다. 그밖에 전통을 자랑하는 음악학교·국립극장 등을 포함한 많은

                  극장이 있다.

                  관광지로서의 부다페스트는 도나우강을 낀 풍경의 아름다움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사적()으로는 부다 북부에 로마시대의 유적 아쿠인쿰(Aquincum)이 있다.

                  부다와 페스트는 원래 별개의 도시로 발달하였다.

                  부다는 2세기부터 파노니안(Panonian) 지방의 로마의 군() 주둔지 아쿠인쿰으로 알려졌다.

                  14세기경부터 부다는 헝가리의 수도가 되고, 페스트도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1872년 부다와 페스트는 합병하여 오늘에 이른다.2차 세계대전 후인 1950년에 인근 소도시 우부다를 합병하여

                  대()부다페스트가 성립되었다


부다성 : 부다 지역의 남쪽 언덕에 자리한 부다 왕궁은 재건과 파괴가 반복된 수난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13세기 후반 벨러 4세에 의해 처음 건축되었고, 몽골 군의 습격을 받아 파괴된 것을

            15세기 마차시 1세 때 재건하였다가 오스만투르크에 의해서 다시 파괴된다.

            17~18세기에 재건 및 확장 공사를 하였으나 헝가리 독립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대대적인 개축을 시작하여 1904년에 완공한다.

            왕궁 건설의 기쁨도 잠시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폭격으로 무너졌고,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서 왕궁보다는 박물관의 성격으로 다시 복원되었으나 여전히 전쟁의 흔적이 여러 건물에서 발견되고 있다.

            왕궁 입구에는 거대한 청동상이 있는데, 이것은 헝가리 민족의 상징인 전설의 새 ‘투룰(Turul)’이다.

            투룰에 의한 전설은 다양하다.

            일반적인 내용은 헝가리 민족의 시조인 알모시의 어머니가 태몽으로 꾼 것인데,

            꿈에 투룰이 나타나 태어날 아이가 위대한 민족의 훌륭한 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또 마자르 민족의 지도자가 꾸었던 꿈에도 투룰이 나타나 독수리에게 공격받는 그들의 말을 구하고

            지금의 헝가리 영토로 인도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부다 왕궁의 투룰 조각상은 유럽에서 가장 큰 새 조각상이기도 하다.

            현재 부다 왕궁은 현재 국립 현대 미술관, 루드비크 박물관, 부다페스트 역사 박물관, 국립 세체니 도서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스만 터키제국의 지배로부터 헝가리를 독립시킨 세르비아인 오이겐(유진)왕자의 기마상등이 있다.


부다왕궁에서 본 다뉴브 강





부다왕궁에서 본 성 이스트반 성당


부다왕궁에서 본 국회의사당


오스만 터키제국의 지배로부터 헝가리를 독립시킨 세르비아인 오이겐(유진)왕자의 기마상





구시가지



마차시성당 : 정식 이름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지만, 이곳의 남쪽 탑에 마차시 후냐디(1458~1490) 왕가의 문장과 그의 머리카락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마차슈 성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기독교의 전래에 따라 원래는 1015년에 건축된 것이다.

                  1255년, 부다 성내에 건축되어, 역대 국왕의 결혼식과 대관식의 장소로서 이용되었다.

                  현존하는 건물은 14세기 후반에 화려한 후기 고딕 양식으로 건조된 것으로서,

                  1479년에 마차슈 1세에 의해 대개축됨으로써, 높이 80미터의 첨탑이 증축되었고, 19세기 후반에 광범위하게 수복된 것이다.

                  700년이라는 교회의 역사 중, 이 성당은 부다의 풍요로움 (혹은, 헝가리인에 있어서 의지처)이었고,

                  따라서 종종 비극의 역사의 상징을 지니게 되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최후의 황제 칼 1세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역대 헝가리 국왕의 대관식이 이곳에서 행해졌을 뿐만 아니라,

                  마차시 1세의 2번의 결혼식도 이곳 성당에서 행해졌다. 구 부다 지구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다.









어부의요새 : 왕궁 언덕의 동쪽에 우뚝 서 있는 네오 로마네스크와 네오 고딕 양식이 절묘하게 혼재된 건물로,

                  1899년에서 1905년 사이에 지어졌다.

                  헝가리 애국정신의 한 상징으로 19세기 시민군이 왕궁을 지키고 있을 때

                  도나우강의 어부들이 강을 건너 기습하는 적을 막기 위해 이 요새를 방어한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
                  중세에는 어부들이 도나우강에서 왕궁 지구에 있는 어시장으로 가는 지름길로 사용되었다.

                  동양적인 색깔이 짙은 고깔모자 모양을 한 일곱 개의 탑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건국 당시의 7부족을 상징한다.

                  전체가 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얀 색의 화려한 성벽과 마차시교회까지 뻗어있는 계단이 아름답다.



겔레르트언덕 : 성 겔레르트는 본래 이탈리아의 베네딕트 수도회 수사로 본명은 지라르도(Girardo).

                     베네치아에 있던 성 조르지오(St. Giorgio) 수도원 원장을 역임하는 등 당시 로마 가톨릭의 거물이었던

                     그는 헝가리의 이스트반(Istvan)왕을 도와 마쟈르인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려는 의도로 파견된다.

                     그러다 1045년, 그는 헝가리에서 기독교화에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킨 이교도들에게 붙잡혔다.

                     이교도들은 겔레르트를 못이 촘촘히 박힌 둥근 통 속에 가두고 그것을 언덕에서 다뉴브강으로 굴려버렸다.

                     그의 온몸은 못이 박혀 살이 찢겨나갔고 통은 다뉴브의 물 아래 가라앉고 말았다.

                     헝가리 최초의 순교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성 겔레르트 동상은 그가 통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이했던 바로 그 언덕에 세워진 것이다.




성 이스트반 대성당 : 성 이슈트반은 헝가리의 초대 국왕이다. 그는 기독교를 헝가리에 전파하여 기독교의 성인이 되었다.

                             이 성당에 그의 이름이 붙은 것은 그의 오른손 미라가 안치되어있기 때문인 걸까?

                             성당의 정문에서도 그의 동상을 볼 수 있다.

                             부다페스트 최대의 성당인 이곳은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해 지어졌다.

                             네오 르네상스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짓는 데 무려 50년이 걸렸다고 한다. 특징적인 것은 탑의 높이.

                             중심에 있는 중앙 돔까지 건물 내부에서는 86m, 돔 외부의 십자가까지는 96m이다.

                             이는 헝가리 건국의 해 896년을 의미한다. 건국천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탑의 높이를 정한 것이다.

                             다뉴브 강변의 모든 다른 건축물들은 도시미관을 이유로 이보다 더 높이 지을 수 없게 규제된다고 한다.






부다페스트 거리에서 유명한 장미 아이스크림



영웅광장 : 벨바로시에서 부다페스트의 문화 거리인 안드라시 거리를 지나 그 끝에 있는 것으로,

               헝가리 1천 년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상징물이다.
               영웅 광장 가장 자리엔 열주()로 이뤄진 구조물이 반원형으로 만들어져

               왼쪽에 7명, 오른쪽에 7명 등 모두 14명의 청동 입상이 서 있다.

               열주가 시작되는 왼쪽 열주의 위에는 노동과 재산, 전쟁의 상징물이,

               오른쪽 열주가 끝나는 윗부분엔 평화, 명예와 영광을 나타내는 인물상이 있다.

               이 열주 기념물은 바로 뒤편에 있는 시민공원인 바로시리게트에 있는데 영웅 광장은 그 입구처럼 보이게 설계 되었다.

              14명의 영웅 중 첫 번째 자리엔 국부로 추앙받는 성 이스트반(Szent István 왕, 970~1038)이 있으며

              그 옆엔 성 라슬로(Szent László 혹은 Saint Ladislas, 1040~1095)왕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국토를 크로아티아까지 확장했고 크로아티아를 가톨릭국가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마르깃섬의 주인공 마르깃 공주의 아버지인 벨라 4세는 다섯 번째에 자리를 잡았고

              헝가리 르네상스의 주인공 마티아스왕의 청동상도 있다.

              오른쪽 원주로 들어서면 왕과 함께 헝가리 독립을 추구한 투사들도 등장한다.

              14번째에 자리한 라요시 코수트는 오스트리아에 대한 반란을 주도했으나 러시아군에 의해 좌절된 민족주의 지도자이다.


              각 동상의 하단에는 헝가리 역사에서 중요한 명장면을 담은 청동 부조물이 한 점씩 걸려 있어 헝가리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스트반왕의 동상 아래 걸린 부조에서는 그가 1000년에 교황 실베스터 2세(Sylvester Ⅱ, 재위 999~1003)가 보낸

              아스트릭(Astrik) 주교에 의해 왕관을 수여받는 장면을 그림으로써 마침내 헝가리가 유럽의 한 부분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헝가리가 십자군에 참여하는 광경은 네 번째 부조에, 헝가리가 오스만트루크의 공격에 대승을 거둔

              1552년 에게르(Eger)전투 장면은 열 번째 부조에 담겨있다.

              열세 번째 부조에서는 헝가리의 왕관이 비엔나로부터 돌아와 주권이 선언되는 장면,

              그리고 마침내 열네 번째 부조에서 1867년 오스트리아와 동등한 자격으로 제국의 한 축이 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요셉 황제 대관식의 장면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영웅 광장 가운데에는 36m 높이의 밀레니엄 기념탐(Millenniumi Emlékm)이 서있고

              꼭대기엔 날개 달린 천사장 가브리엘의 상이 서 있다.

              가브리엘 상은 사람의 두 배 크기로 조각가 죄르지 절러(György Zala)의 작품.

              가브리엘상이 안치된 것은 하느님이 보우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쟈르인들의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절러는 이 작품으로 1900년에 열린 파리 세계엑스포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가브리엘 천사는 오른손에 헝가리의 왕관을, 왼손엔 그리스도의 사도를 의미하는 십자가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이스트반왕이 헝가리를 개종시켜 성모 마리아에게 바쳤다는 의미이다.

              원주의 맨 아래 부분에는 헝가리 민족을 트랜실바니아로 인도했던 일곱 부족의 부족장들이 동상으로 서 있다.

              그 앞엔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는 무명용사 기념제단이 있다.

              바닥에 깔린 동판에는 '마쟈르인들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그들 자신을 희생한 영웅들을 기억하며'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영웅 광장은 밀레니엄인 1896년 공사가 시작되어 1901년 헌정되었지만 실제 공사는 1929년에야 끝났다.

              명칭도 본래는 '밀레니엄 기념광장'이었으나 1932년 '영웅 광장'으로 변경되었다.

              물론 이곳도 제2차 세계대전 중 피해를 입었으나 복구되었다.

              영웅 광장의 왼쪽에는 예술사 박물관, 오른쪽에는 미술사 박물관이 영웅 광장을 마주보며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다뉴브강 야간 유람선






동행한 6명의 의사 가족과 함께


숙소 노보텔


다뉴브 강변 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