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2018.08.14 노보데비치수도원, 모스크바국립대학, 참새언덕, 크레믈린궁전, 붉은광장

갯바우2 2018. 8. 25. 15:04

이즈마일로보 호텔 조식 후 노보데비치 수도원 관광, 모스크바 국립대학, 참새언덕, 중식으로 샤슬릭을 먹고

크레믈린 궁전, 성 바실리 성당, 붉은 광장 관광, 석식 후 러시아 민속공연 관람


호텔 좌측에 있는 ?


노보데비치 수도원

모스크바 남서쪽에 있는 노보데비치 수도원(Ensemble of the Novodevichy Convent)은

16, 17세기에 이른바 ‘모스크바 바로크 양식(Moscow Baroque style)’으로 건축되었다.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모스크바의 방어 체계에 통합된 수도원 중에 하나로 러시아 정치사·문화사·종교사와 직접적이고 깊은 연관이 있다.

차르 일가와 귀족 여성들이 이 수도원을 이용하였고, 사망한 후에는 이 수도원 묘지에 묻혔다.

러시아 건축의 뛰어난 성과를 보여 주는 수도원은 아름답게 장식된 내부시설 안에 중요한 회화와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거리화가에게서 그림 한점 구입



모스크바 국립대학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는 학자인 미하일 로모노소프에 의해 1755년 모스크바 중심가에 세워졌다.

1940년대 말, 스탈린은 러시아의 새 대학교 건물을 짓기로 결심하고 레프 루드네프(1885~1956년)에게 설계를 맡겼다.

스탈린의 집권이 강화되면서 모스크바의 구성주의 건축은 막을 내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축 양식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스탈린은 모스크바 시가지의 상당 부분을 소위 '스탈린 고딕' 양식으로 재건하고 싶어했다.

스탈린의 '7자매'라고 불리는 일곱 개의 마천루가 시내 중심지에 세워져, 모스크바 어디에 있더라도 그중 하나가 눈에 들어오게끔 했다.

'웨딩 케이크'라는 별명으로 인해 오해의 여지가 있지만, 사실은 전혀 매력적인 구석이라고는 없는, 위협적인 건물들이다.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는 '7자매' 중에서도 가장 높은 건물이다. 높이가 240미터로, 사실 1988년까지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크렘린의 탑과 유럽의 고딕 대성당에서 영향을 받았다.

독일군 전쟁 포로들의 노동력으로 지어졌으며, 33킬로미터의 복도와 5천 개의 강의실이 있다.

중앙 타워의 꼭대기에 있는 별은 무게가 12톤에 달하며, 파사드는 밀단과 소비에트 문장, 그리고 시계로,

그 아래의 테라스는 자신있게 미래를 바라보는 학생들로 장식하였다.





참새언덕

모스크바 시가지와 모스크바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러시아혁명 뒤 '레닌언덕'으로 불렸으나 '참새언덕'이란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톨스토이의 ' 전쟁과 평화 '에는 나폴레옹이 이 언덕에 올라 모스크바 시내를 내려다보는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이지만 높이는 해발고도 220m 정도밖에 안 된다.

모스크바 시내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적합하여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중식 : 샤슬릭
러시아어로 ‘꼬치구이’라는 뜻으로
쇠고기, 양고기 등 고기뿐만 아니라 야채나 해산물 등을 먹기 좋게 잘라 양념에 재 놓은 뒤 꼬치에 꽂아 숯불에서 고루 익혀내는 요리를 말한다. 러시아 대부분의 집에서 샤슬릭에 필요한 재료나 도구를 갖추고 있을 정도로 러시아인들이 가장 즐기는 일반적인 음식 중 하나다.





크레믈린 궁전 가는 길




크레믈린 궁

' 크렘린 ' 은 성체 또는 성벽을 의미하는 러시아 어 ' 크레믈 '의 영어식 표기이다.

13세기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를 건설할 때까지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은 러시아 역사의 주요한 사건들과 직접적이고 분명한 연관이 있는 장소였다.

크렘린 궁전 성벽 안에는 다수의 독특한 건축물과 조형 예술의 걸작이 있다.

이를테면 수태고지 교회(Church of the Annunciation), 성모 승천 대성당(Cathedral of the Dormition), 천사장 교회(Church of the Archangel), 이반 벨리키(Ivan Veliki) 대제의 종탑같이 뛰어나게 아름다운 종교 기념물이 있다.

크렘린 대궁전과 성벽 안에는 성모 마리아 탄생 교회(Church of the Nativity of the Virgin, 1393)와 테렘 궁전(Teremnoi Palace) 같은 기념물이 있다.

붉은 광장에 있는 상트 바실리 대성당은 러시아정교회 예술의 가장 아름다운 건축 기념물이다.

러시아 건축물은 크렘린 궁전 양식의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양식의 영향도 찾아볼 수 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은 1156년에 건설되었고, 다른 기념물들과 뛰어난 조화를 이루었다.

1263년에 모스크바 공국이 설립되고 1328년에 블라디미르(Vladimir) 공국이 모스크바로 이전한 이래로 이곳은 정치, 종교 권력의 중심지였다. 원래 건물 몇 채는 대성당 광장 경계에 있었으나, 성모 마리아 탄생 교회 같은 다른 건물은 재건할 때 대궁전 안으로 편입되었다.

총대주교 사원, 17세기에 세운 12사도 교회(Church of the Twelve Apostles) 그리고 특히 성곽 북서 모퉁이에 있는 표트르 대제의 무기고를

재건하면서 궁전은 북쪽으로 확장되었다.

카자코프(Matvey Fyodorovich Kazakov)는 예카테리나 2세(Catherine II)를 위해 상원의 삼각 궁전(The triangular palace of the Senate, 구소련()의 각료회의실)을 건축하였다.

상원의 삼각 궁전은 예수 승천 수도원(Monasteries of the Miracle and of the Ascension)과 무기고 사이 북동쪽에 들어섰다.

그러나 예수 승천 수도원과 무기고는 1932년에 철거되었다.

카자코프는 남동쪽에 예카테리나 여제를 위해 소규모의 니콜라이(Nicholas) 궁전을 지었으나, 역시 1932년에 파괴되었다.

크렘린 궁전 동쪽 성벽 아래 있는 붉은 광장은 크렘린 궁전과 연결되어 있다.

광장 남쪽에 있는 상트 바실리 대성당은 러시아정교회 예술의 가장 아름다운 기념물로 유명하다.

상트 바실리 대성당은 원래 카잔(Kazan) 성당과 짝을 이루는 교회였다.

카잔 성당은 포자르스키(Pozarsky) 대공이 폴란드를 상대로 거둔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1633년에 ‘고움(Goum)’과 인접한 넓은 지역에 건축하였다.

그러나 카잔 성당은 1930년대 초반에 주변에 있던 수녀원 몇 채와 함께 사라졌다.

크렘린 궁전은 삼각형 모양의 성곽에 둘러싸여 있으며, 성벽에 5개의 문과 29개의 탑을 증축하였다.







쿠타피야타워

크렘린에는 모두 스무 개에 이르는 탑과 망루가 있는데 열아홉 개가 성벽 위에 솟아 있고 쿠타피야 타워만 성 밖으로 나와 있다.

높이도 제일 낮아 13.5m밖에 안 되는 데다가 생긴 것도 타워라기보다 건물에 가깝고 그나마 천장도 지붕도 없이 사방으로 벽체만 서 있다.

밀라노에서 온 건축가 알로시오 디 카르카노가 1516년 해자 바깥에 지은 전방 방어용 망루 겸 포대였기 때문.

이곳과 크렘린 출입구 트로츠카야 타워 사이엔 들어올리는 다리 도개교가 놓여 있어 공격자에게는 난공불락의 장애물이었다고.

건물이 크고 둔하게 생겼다고 해서 '못생기고 남루한 여자'를 뜻하는 쿠타피야라는 이름을 얻었고, 

지금은 관광객들이 크렘린으로 들어가는 입구 구실을 하고 있다.



트로이츠카야 타워

크렘린 서쪽 성벽 중앙에 선 트로이츠카야 타워는 스무 개 성벽 탑 가운데 가장 높아 80m에 이르고

밀라노 건축가 알로이시오가 방금 지나온 쿠타피야 타워보다 앞서 1499년에 완공했다.






아래 석조 건물은 6천석짜리 국가크렘린궁인데 일반에게는 크렘린 대회의궁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크렘린 건물 중에서 제일 최근인 1961년 흐루쇼프 서기장 시절에 지어 소련 공산당대회와 중앙위 총회 장소로 썼고

소련 해체 후엔 국제 회의장이나 볼쇼이극장 부속 극장으로 사용한다.



500여년 전 이반3세(대제)가 비잔틴에서 도입해 온 러시아의 상징 쌍독수리가 들어 있는데,

러시아혁명 후 낫과 망치가 든 소비에트 문장에 밀려 사라졌다가 소련방 해체 후 정부 청사에 다시 등장했다.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노획한 청동 대포들


스파스카야타워

​1491년 이탈리아 건축가 피에트로 솔라리가 세웠는데,크렘린 타워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71m이며 '구세주'라는 뜻이다.

타워 아래로 난 동쪽 성벽 문은 크렘린의 주 출입구였고, 이곳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든 말에서 내려 투구를 벗어야 했다고 한다.​

소비에트 시절엔 당 서기장을 비롯한 최고 정치 지도자들만 드나들었다하며

꼭대기엔 원래 제정 러시아의 상징 쌍두 독수리상이 올라앉아 있었지만

1935년 소련 정부가 끌어내리고 트로이츠카야타워처럼 왕별 '루비 스타'를 올렸다.

시계는 15세기 말~16세기 중반에 단 것으로 짐작하며, 시간에 맞춰 종이 울려 '크렘린 차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대통령 집무실

'세나트키 드보레츠'라고 부르며 영어로는 'Senate Palace(세니트 궁)'쯤인

'상원'은 아니고 제정 러시아 시대 최고 사법-입법 기구였던 '세나트'의 모스크바 청사(본청은 당시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1787넌에 완공.

'세나트'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보야르들의 귀족의회를 개혁 군주 표트르1세가 해산하고 대신 만든 기구이다.

돔 지붕 위에 러시아 삼색기가 내걸린 것은 지금 푸틴 대통령이 궁에서 집무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차르(황제)의 대포'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당대의 주물 장인 안드레이 초호프가 대포를 만든 1586년은 폭군 이반4세(뇌제)가 독살당하고
2년 뒤 혼란기 속 차르를 물려받은 표도르 이바노비치 때이다.
구경이 89cm나 돼서 지금도 기네스북에 구경이 제일 큰 대포로 남아 있다고 하며, 길이 6m, 무게도​ 39톤에 이른다.
원래는 나무 수레에 얹혀 있었는데 1812년 모스크바 대화재 때 불타고,
1835년 철제 수레를 만들어 얹었다 하며 발사대처럼 보이지만, 수레일 뿐이라하며 그나마 실전에 쓴 적이 없어서 장식품 이상 의미가 없다고.

원래는 대통령 집무실 세나트궁 북쪽 병기고에 있었는데,세계에서 제일 큰 '차르의 종'이 있는 성당광장 주변 이곳으로 1860년에 옮겨 왔다 한다.

1980년 정밀 조사를 해봤더니 화약 흔적이 남아 있어 적어도 한번은 시험 발사를 했을 거라고...


차르의 종

종의 제원을 보면 높이 6.14m, 직경 6.6m, 두께 61cm, 무게 201.9톤, 깨어진 조각 부분만 10톤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이다.

청동이 주 재료이지만 525kg의 은과 72kg의 황금도 섞어 넣었다니 값으로 계산해도 엄청난 종이다.

이종의 주조가 완성된 해는 1735년 '안나' 여제때 인데, 표면 조각등 마무리 작업을 거의 완성시킨 1737년 대형화재로 인해

불이 옮겨 붙었고, 물을 뒤집어 쓴 종이 파열이 되어 깨어지게 되었다 한다.

1812년 모스크바를 침공한 나폴레옹이 철수하면서 전리품으로 가져가려 했으나, 너무 무거워 포기했다 한다.







아르헹겔스키 사보르(미하일 대천사 성당)

이태리 베네치아 건축가인 '알례비스 노브이( Алевиз Новый )' 의 설계로
'이반 깔리따' 에 의해 1333년에 세워진 성당이 있던 자리에 세워 졌고

'성당의 광장' 에있는 다른 건축물들 과는 다르게

이태리 르네상스 건축양식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건축물이다.

성당의 벽화는 '이반 대제' 때인 1564 ? 1565년에 그려진 것으로

벽화에는 전쟁에 관련된 사건과 러시아성립 까지의 내용이 의화적 으로 그려져 있으며 그 외에 60명 귀족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또한  '표트르 대제'전 까지의 영주들과 왕들의 관이 놓여 있는 곳으로

그 안에는 '이반 깔리따' 를 비롯하여 '드미뜨리 단스꼬이', '이반 III 세', '이반대제' 와

그의 아들들 등 총 56 명이 46개의 관에 묻혀 있다.

 하얀 벽돌의 관들은 1903년 동과 유리로 만들어진 관으로 덮여 지게 되었으며

지금 까지도 고스란히 보존 되어 있다.



현관 박공화는 수태고지성당처럼 그리스도를 맨 위에 모시고 성인과 천사들이 성스러운 집회를 하는 시낙시스(Synaxis)화입니다.

맨 아랫단에 천사들을 그려놓았는데, 그중 문 아치 바로 왼쪽 위에 서 있는 천사가 미카엘(미하일) 대천사인 듯 하다고...



블라고베시첸스키 사보르(성모 수태고지 성당)

수태(受胎) 고지(告知)란 하느님이 대천사 가브리엘을 시켜

동정녀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잉태했음을 두 차례 알린 것을 가리키며,성모에게 알린다는 뜻으로 성모 영보(領報)라고도 한다.

1484년 그 자리에 있던 같은 이름의 석조 성당을 허물고 1489년에 완공하였으며

크렘린 3대 성당 가운데 제일 작은데 이반3세(대제)가 대공 개인의 성당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엔 돔도 셋밖에 안 됐다가,​ 1547년 대화재 때 많이 손상된 뒤 ​1564년 이반4세(뇌제)가 증개축을 하면서

네 귀퉁이에 늘려 지은 예배당 넷에 하나씩 돔을 올리고 별도 돔도 둘을 올려 모두 아홉 개로 늘어났다.

수태고지성당은 다른 두 성당과 달리 이탈리아 건축가들 도움 없이 

러시아 서북부 프스코프의 러시아 건축가들을 데려다 모스크바와 프스코프 식으로 지었졌다.

반원형으로 둥글게 튀어나온 앞부분 벽 위쪽난간 기둥 장식을 띠처럼 늘어뜨린 것을 모스크바식이라고 하며

프스코프 양식은 벽체 위 돔 지붕 사이 다락벽을 끝이 뾰족한 코코시니크(코코슈니크) 아치로 처리한 데서 볼 수 있는데

​러시아 전통 민속 의상에서 여자들이 쓰는 모자 또는 관 코코시니크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돔을 받친 원통형 드럼에 좁고 긴 창문을 내고 드럼 윗부분에 삼각형이나 반원 무늬를 띠를 두르듯 새긴 것도 프스코프식이라고 한다.



12사도성당

1653년 차르(황제) 못지않은 권력을 누리던, 니콘 총주교가 차르와 경쟁하듯 자기 거처로 지은 궁과 전용 성당.

성당 아래쪽에 두 개의 아치형 통로를 내 궁 안뜰과 성당광장을 연결하였다.

러시아 정교회 성당들은 대개 돔을 세 개나 다섯 개 올리는데,

바로 앞 이반대제가 170년 전에 지은 성모승천대성당처럼 다섯 개를 세웠으며, 돔 빛깔은 성모승천성당의 황금빛과 달리 은빛이다.

성당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러시아식 양파 돔이 아니라 비잔틴식 헬멧 모양 돔이라는 점인데

양파 돔에 비해 곡선이 덤덤하고 높이도 낮은 편으로, 니콘 총주교의 보수적 건축 취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이 비잔틴식 돔이 러시아 전통 교회 건축과 합쳐 탄생한 것이 양파 돔이다.

니콘 총주교는 궁과 성당을 지은 13년 뒤 교회 회의 결정에 따라 총주교 직을 박탈당하고 평사제로 격하되는데

전제 왕권과의 경쟁에서 패한 이유 때문으로 추측.

궁과 성당은 1917년 러시아혁명 때 볼셰비키들에게 폭파돼 폐쇄됐다가 고쳐 지어

지금은 공예-장식미술 박물관으로 쓰고 있으며, 크렘린 성당들의 이콘(성화)들도 모아 전시한다고.


이반대제 종루

크렘린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며

성당 광장을 에워싼 3대 교회엔 따로 종탑이 없어서 세 성당의 종루 구실을 겸하는 ​건축물로 

이탈리아 건축가 본 프리아진이 1508년 지었으며, 일층은 1950년대 전시 공간으로 고쳐 다양한 기획전을 열고 있다.

이름은 15세기 후반 베네치아에서 건축가들을 데려와 다양하고 웅장한 건물과 타워들을 세운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1440~1505)를 기려 붙였다.

그는 법전을 만들어 국가 기틀을 세우고 오랜 세월 모스크바 공국을 지배하던 타타르족을 몰아냈으며

여러 공국으로 나뉘어 있던 러시아를 통일해 '이반 대제'로 불리는데.그의 손자가 처음 차르(황제)라는 칭호를 쓴​ 폭군 이반 4세(뇌제)이다.

오른쪽 제일 높은 종탑이 81m에 이르는데요, 외적의 침입을 맨먼저 알리는 망루 역할도 중요했기에

모스크바에서 그보다 높은 건물을 짓지 못하게 했고 그래서 러시아 전국에서도 400년 가까이 가장 높았다가

1883년 모스크바강변에 105m 구세주그리스도대성당이 올라서면서 기록이 깨졌다.

원래 이반대제가 건설을 지시한 종루는 오른쪽 두 종탑이었는데, 종루는 그나마 이반대제가 죽고 3년 뒤에야 완공됐고,

왼쪽 천막형 첨탑이 올라선 건물은 1543년 종루에 지어 붙인 예수 승천 교회이지만,

17세기부터는 예배당이 아니라 타종에 맞춘 성가대 공간으로 써 왔다고 한다.

벽돌과 하얀 대리석으로 지은 종루에서 종들은

광장을 에워싼 성당들의 여러 의식과 황실 대관식과 장례식 비롯한 경조사, 외적의 침입을 알렸고

이곳 종루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시작으로 모스크바 시내 수백 개 종들이 타종됐다고 한다.






우스펜스키 사보르(성모승천성당)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 피오라반디가 블라디미르의 우스펜스키 대성당을 모방하여 1479년에 건축한 것이다.

대성당의 벽과 지붕은 프레스코화 이콘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이곳에 성화를 그리기 위해 무려 1천 명이나 되는 화가들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12세기의 성 게오르기 상과 13~14세기의 삼위일체 상이 유명하며, 나폴레옹 군대가 퇴각할 때 훔친 300kg의 금과 5톤의 은을 되찾아

만들었다는 샹들리에가 있다.

러시아에서는 국교 대성당이라고도 부르며 이곳에서 황제의 대관식과 모스크바 총주교의 장례식을 치르기도 했다.




성모 승천 성당 내부의 샹들리에 : 나폴레옹군이 모스크바를 점령했을 때 이 성당을 창고와 마굿간으로 썼다는데

                                                             그때 모스크바에서 약탈해 간 황금 300kg과 은 5톤을 나중에 되찾아 이 성당의 샹들리에를 만들었다 한다. 



성 바실리 성당(사보르 바실리야 블라줴나바)

모스크바 대공 이반4세(뇌제)가 1552년 몽골 한국(汗國-칸국)의 하나였던 남쪽 타타르계 카잔한국을 정벌해

오랜 타타르 지배를 벗어나면서 러시아 제국의 기틀을 다졌는데 카잔 정복을 기념해 1551~1561년에 걸쳐 세운 것이 바실리성당이다.

성당의 정식 이름은 성모께 바친 중앙 예배당 이름을 따 '성모 전구(傳求)성당'입니다.


건축가와 건축 양식을 두고도 지금껏 학설이 엇갈리고 있는데

건축가는 '바르마와 포스트닉 야코블레프'로 전해 오는데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는 게 정설이다.

역사 기록에는 '천국 같은 성지 예루살렘'을 성당으로 형상화했다고 돼 있으며

다채로운 탑과 돔들이 솟아 있는 모양이 ​전체적으로는 모닥불을 피워놓은 듯 하다.

이 성당을 설계한 건축가의 눈을 멀게해 이 보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지 못하게 했다는 얘기가 전해져 온다.


가운데 탑이 높이 솟은 중심 성당을 에워싸고서 아홉 개 예배당이 빙둘러 서 있는 독특한 형태이며

중앙 주 예배당 탑만 팔각형 첨탑이고 둘러싼 예배당들은 비잔틴 정교회에서 유래한 양파 모양 돔을 이고 있는데

중앙 탑은 높이가 65m에 이르며,

바실리성당은 17세기에 절정을 이룬 러시아 종교 건축의 효시이자 모범이 됐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름다운 성당 피의 사원도 이 바실리성당을 본떠 지었습니다.


450년 전 돔을 만들 때에는 독일에서 들여 온 쇠로 틀을 만들고, 위에 함석을 다채롭게 가공해 덮은 뒤에 채색을 했는데

함석이 자주 녹슬어 10여년 만에 한 차례씩 보수를 하다가, 1969년 모두 구리로 바꾼 이래 별 다른 수리없이 오늘에 이른다.

1mm 두께의 동판이 모두 32톤이나 들어 갔다고 한다.



17세기 초 폴란드가 모스크바를 침공해 왔을 때 민병대를 조직해 물리친

두 국민 영웅​ 쿠즈마 미닌(왼쪽)과 드미트리 포자르스키의 동상인데 미닌은 평민, 포자르스키는 왕자로 불린 귀족이었다고.

공모를 거쳐 당선된 조각가 이반 마르토스가 1818년에 세웠다.





좌측의 붉은 건물이 러시아 국립 역사 박물관, 우측은 굼 백화점


굼 백화점

러시아의 최고급 백화점으로 1890년부터 3년에 걸쳐 세워졌으며 러시아혁명 뒤인 1953년에 지금과 같이 개조하였다.

이 백화점은 3층 건물이며 지붕은 유리로 되어 있다.





백화점 앞 노천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저녁식사 - 한식, 김치찌개 - 장소로 이동 중




이슬람 신도들을 위한 모스크


모스크바강의 삼각주에 범선 모양을 한 탑이 보이고, 배 위엔 커다란 동상이 서 있는데 높이가 98m에 이르는 표트르대제 기념물이라고.

러시아 해군 창설 300주년을 기념해​ 1997년에 세웠는데 해군을 만든 이가 표트르 ​대제. 조각가 주라브 체레텔리의 작품.







러시아 전통 민속공연을 관람하기위해 극장으로 이동

민속공연은 러시아의 원조인 바이킹족울 불러들이는 의식으로 시작해서 루릭왕조, 모스크바 공국, 로마노프 왕조를 거치면서

기독교를 이는 과정, 소비에트 연방의 탄생, 소련의 붕괴등 역사적인 사실을 수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여 리얼하게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